이 책은 약 20년 전 프랑스 여행과 이후 이어진 여정- 당림미술관의 화실과 동네 카페 -을 통해 어떻게 글쓰기라는 내 퍼스널 브랜딩을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발견은 작년에 읽은 [여름의 묘약]과 [아티스트 웨이: 중년 이후의 삶에서 창조성과 의미를 발견하기]라는 두 권의 책에서 힘입은 바 크다. 첫 번째 책은 김화영 교수의 [여름의 묘약]인데, 이 책을 읽다가 약 20년 전의 프랑스 여행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시 여러 사정으로 떠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소 무리해서 떠난 여정은 파리에서 시작해 몽블랑과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리옹을 거쳐 파리에서 마무리되었다. 엑상프로방스와 마르세이유, 리옹 근처의 슈농소 성, 떼제 공동체 등 여러 곳이 멋졌지만, 세잔의 화실과 단골 카페인 레뒤가르송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세잔의 화실은 생전 모습 그대로 100년 가까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2년 뒤, 충남 ‘당림미술관’에서 고 이종무 화백의 화실을 보고 한동안 잊고 있던 세잔의 화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예술가의 삶과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화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뭔가 어깨가 펴지는 기분이었다. 요즘 해외 경매와 아트 페어에서 국내 화가들의 작품이 수십억 고가에 거래된다는 소식에 느끼는 높아진 K-아트의 세계적 위상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다.
두 번째 책은 창의력 회복과 발전에 관한 줄리아 캐머런(Julia Cameron)의 [아티스트 웨이]이다. 이 책을 읽고 ‘아티스트 데이트’의 일환으로 평소 눈여겨보다가 찾은 동네 카페에 앉아 있으려니 세잔이 자주 찾던 미라보 대로의 단골 카페가 떠올랐다. 그 순간 세잔 화실과 당림미술관의 화실, 그리고 이 작은 카페가 시공을 초월해 연결되면서 전율을 느꼈으며, 이 특별한 순간의 감동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이와 관계없이 나의 퍼스널 브랜딩이 뭔지 고민하는 모든 독자들, 특히 은퇴 후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퍼스널 브랜딩(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글쓰기와 자기 발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장소 이동을 기록한 다른 여행기와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이 책은 유용한 여행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20년 전 여행이니 구체적 정보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다 잊어버렸고, 다행히 기억한다 해도 해묵은 정보이다. 둘째, 퍼스널 브랜딩 발견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프랑스뿐 아니라 당림미술관 화실과 동네 카페 같은 한국 이야기도 들어 있다. 셋째, 이런 연유로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 여행 에세이나 여행 산문, 더 정확히 나의 퍼스널 브랜딩을 찾아가는 일종의 성장소설(Bildungsroman)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이처럼 여행기와 퍼스널 브랜딩을 찾는 여행 에세이가 섞여 있으므로,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퍼스널 브랜딩 찾기와 여행기를 두 부분(1,2부와 3,4,5부)으로, 그리고 여행기는 ‘혼자’ 다닌 여행(3부)과 ‘같이’ 다닌 여행(4부)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20년 전 여행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만의 감상적인 추억 소환에 불과한 게 아닐지 망설이던 중, 괴테가 ‘여행 에세이의 정전‘이라는 [이탈리아 기행](민음사, 2023)에 약 30년 전의 과거 여행도 담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즉 60대의 괴테가 자신의 30대 여행(1786-1788, 2년의 여행)을 반추하여 두 권의 책(1816-1817, 1829년)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명한 문필가나 여행 유튜버도 아닌 나의 이 ’유레카’ 여행기가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로마서 8:28)을 이룬다는 말씀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결론은 하나! [민들레는 민들레](김장성, 이야기꽃: 2014)처럼, “나는 나다!” 그래서 나만의 스타일로, 나만의 속도로, 그저 생각나는 대로 내 삶의 찬란한 보석 같은 순간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퍼스널 브랜딩’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분야에서 차별화되는 나만의 가치를 높여서 인정받게끔 하는 과정’(네이버 국어사전)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일 찾기’ 정도로 사용하고자 한다. 내 책을 읽고 독자 여러분도 여행이나 삶의 찬란한 보석 같은 순간들을 돌아보며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할 수 있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찾기 바란다. 퍼즐 조각이 모여 신기한 형상을 이루고 해골 골짜기에서 마른 뼈가 맞춰져 생기있는 큰 군대가 되듯, 과거의 보석 같은 순간들이 독자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기를, 그래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여정이 독자 여러분의 퍼스널 브랜딩 찾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몇억 인구 중 단 몇 명에게라도 작은 위안이나 영감을 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 역할을 좋아했고, 그런 역할을 종종 하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친구와 남편 후배를 중매하여 두 번이나 성공했고, 서로 알면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곤 했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사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프랑스 여행이 과거와 현재,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듯이, 당시의 경험들이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정신적 유산 등 내게 던져준 질문과 통찰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여 새로운 생각의 문을 열어주고 싶다.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버지는 전후 어린이들이 각박한 현실에서 광활한 우주와 바다로 눈을 돌려 꿈과 희망을 갖게 해준 SF 작가였으며, 국문과 졸업생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꿈꾸던 문학소녀였던 어머니는 본인의 꿈 대신 남편을 말없이 보필하셨다. 또한 새로운(?) 분야에서 자기 길을 모색하는 나를 그간 걱정스레 지켜본 남편과 두 딸, 그리고 좋은 책 같이 읽는 시네라쳐 북클럽과 와북 북클럽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서문 마지막 인사처럼, 나도 ‘세상에 나가 번성’하길 바라며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 머리말 중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틈나는 대로 열심히 다녔다. 연구교수로 세 번 체류한 미국 외에 20개국 이상 다녔다. 그 중 아이슬란드와 이스라엘, 요르단, 모나코 왕국, 스위스, 몰디브, 스페인, 튀르키에, 호주, 러시아, 몽골 등이 인상적이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름답고 품위 있는 마무리’를 꿈꾸며 하루하루 즐겁고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글로 이제까지 쌓은 지식과 경험을 전하는 것을 제 3막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 여행기는 그 첫 열매이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기에 “가슴 설렐 때가 아니라 다리 떨리지 않을 때” 떠나려 노력 중이다.
이화여대에서 학사, 서울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예일대와 코넥티컷대, 퍼듀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힐)에서 연구하였다. 이전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에서 은퇴하고, 현재는 명예교수. 웰다잉전문강사와 ‘한낙원과학소설상’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학술 부문의 업적으로 대통령의 훈장(2022)과 국무총리상(2021)을 수상하였다.
다수의 영문학 관련 저역서(46권)를 출간하였다. 『19세기 영국소설과 영화』(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플로스강의 물방앗간 다시 읽기』(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영화로 죽음 읽기』,『영화로 보는 품위 있는 마무리』등의 저서와 [사일러스 마너], [미들마치],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위대한 개츠비], [각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역서가 있다.